쓰레기 더미로 방치 된 일본 도쿄 이봉창 의사 순국지가 말해주는 바
이봉창 의사는 1931년 12월 13일 정식으로 한인 애국단에 가입을 하고 한달여 후인 1932년 1월 8일 도쿄에서 사열을 받고 돌아가고 있던 히로히토 천황을 향해 수류탄 1발을 투척하며 의거를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당시엔 여러대의 마차가 동행하고 있었고 어느 마차에 진짜 히로히토가 탑승하고 있는지 그는 알 길이 없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안타깝게도 이봉창 의사는 히로히토 천황을 암살하는데 실패하고 맙니다. 하지만 그가 일으킨 의거는 우리국민들에게 많은 의의를 남겼습니다. 여타 다른 의거와는 달리 일본 국왕을 직접적인 타켓으로 지정하여 조선인이 일으킨 의거라는 점과 일본 한복판에서 한국인의 이름으로 폭탄을 던졌다는 점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봉창 의사 한인애국단에 들어갔을 당시의 모습
쓰레기 더미로 방치된 이봉창 의사 위령비
하지만 일전에 제가 알고 있었던 것과는 달리 이봉창 의사는 의거당시 바로 잡히지 않았습니다. 즉 그는 살아나갈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외형상으로 조선인같지 않았으며 일본어 실력도 일본인 뺨치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의거 당시 현장에서는 이봉창 의사 대신에 다른 일본인이 경찰들에게 의심받아 맞고 있었습니다.
이에 이봉창 의사는 침착하게 "숨지 않을테니 (그를)점잖게 다뤄라"라면서 그를 대신하여 어쩌면 죽음에 이를 수도 있는 일본인의 누명은 벗기고 자진하여 일본인에게 잡혔습니다. 즉 일종의 자수를 한 것입니다. 조국을 침략하고 유린한 일본이라는 국가는 죽도록 싫었던 이봉창의사였지만 그렇다고 누군지도 모르는 일개 일본인까지 그는 역겨워하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공과 사는 분명히 하였던 진정한 열사 이봉창
지금은 터만 남은 이치가야 형무소
결국 그렇게 잡힌 이봉창은 이치카야 형무소에서 1932년 10월 10일 사형을 당함으로 형장의 이슬로 쓸쓸이 타국에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하지만 진정된 그의 마음을 일부 일본인들은 시간이 지나고서 알아준 것이었을까요? 1964년 일본의 변호사연합회는 이치카야 형무소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혼들과 이봉창 의사를 위해서 형사자위령탑을 세워주었습니다.
관리가 전무한 이봉창 의사 위령비
하지만 그것도 잠시... 도쿄 신주쿠에 있는 이봉창 의사 순국지는 쓰레기 더미로 방치되어 몸살을 앓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심지어 주변에 거주민들은 해당 위령탑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무엇때문에 세워져 있는 것인지도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알고 싶지도 않을 것입니다.
일본의 입장에서는 이봉창 의사가 단순한 테러리스트에 불과할테니 말입니다. 하지만 위로해준답시고 비석까지 세웠는데 이렇게 쓰레기장처럼 방치하는 것은 오히려 농락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해줄껀 다 해줬으니 뒷감당은 알아서 하라는 소리인가요? 일본과 같이 2차대전 전범국으로 많은 잘못을 저지른 독일을 보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독일은 그렇다면?
독일 역시 자국의 수도인 베를린에 자신들의 만행(홀로코스트)로 죽어간 많은 이들을 기리는 비석을 세웠습니다. 독일은 아예 일본과는 달리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가든이라고 아주 그냥 공원을 크게 만들었습니다. 그것도 독일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브라덴부르크문의 근처에다 말입니다. 보면 아주 관리도 잘 되어있고 대우자체가 다릅니다. 쓰레기라고는 한줌도 볼 수 없습니다. 그들이 잘못했고 반성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곳이니 그만큼 관리를 잘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누구보다 잘못한 독일은 자신들의 심장부에 위령비를 세우더라...
하지만 일본은 이봉창 의사 순국지를 아예 쓰레기 더미로 방치 한 채로 두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잘못에 대한 사과가 진정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보여주기식은 지겹습니다. 물론 그마저도 하지 않는 일본이지만은 말입니다.